파소 로블스 (Paso Robles)
파소 로블스(Paso Robles)는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 샌프란시스코와 LA의 딱 중간에 자리한 산지다. 나파·소노마의 명성에 가려져 있다가 200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뜨거운 신흥 산지”로 급부상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론 품종의 성공 — 세 박자가 맞아떨어진 캘리포니아 와인의 히든 카드다.
미국 최대의 일교차
파소 로블스의 무기는 극단적인 일교차다. 낮에는 40도 가까이 치솟다가, 태평양에서 템플턴 갭이라는 산맥 틈새로 밀려드는 해풍에 밤 기온이 20도 이상 뚝 떨어진다. 미국 주요 산지 중 최대 수준의 이 일교차가 진하게 익은 과일과 살아 있는 산도를 동시에 잡아준다. 서쪽 언덕(석회질 토양, 서늘)과 동쪽 평지(따뜻)의 성격이 달라 2014년 11개 하위 AVA로 세분화됐을 만큼 테루아 스펙트럼도 넓다.
론 레인저스의 수도
파소 로블스를 유명하게 만든 건 카베르네가 아니라 론 품종이다. 시라,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비오니에 같은 프랑스 론 밸리 품종들이 이 땅에서 만개했고, 이 스타일에 헌신하는 생산자들을 “론 레인저스(Rhône Rangers)”라 부른다. 정점에는 컬트 와이너리 색섬(Saxum)과, 프랑스 샤토네프 뒤 파프의 명가 페랭 가문이 직접 세운 타블라스 크릭(Tablas Creek)이 있다 — 원조가 바다를 건너와 인증한 셈이다. 물론 생산량 1위는 여전히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나파의 절반 가격에 풍만한 캘리포니아 카베르네를 즐길 수 있는 실속 구간으로 통한다.
여담
진판델의 유서 깊은 산지이기도 하다. 19세기 이민자들이 심은 드라이 파밍(무관개) 고목 진판델 밭이 아직 현역이다.
나파가 정장이라면 파소는 청바지다. 예약 없이 들르는 셀러도어,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는 오너 양조가 — 격식 없는 분위기가 이 지역의 브랜드다.
바비큐, 스모크드 브리스킷과 파소 시라·진판델의 궁합은 미국식 페어링의 정석이다. 한국식 양념 바비큐와도 잘 맞는다.
온천 마을로 출발한 동네라 지금도 와인+온천 조합의 주말 여행지로 인기다. 서핑 명소 피스모 비치도 차로 30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