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Rhône)

론(Rhône)프랑스 남동부, 론강을 따라 남북 200km에 걸쳐 이어지는 와인 산지다. 리옹 아래에서 시작해 아비뇽 근처까지 내려오는 이 긴 지역은 사실상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산지가 한 이름을 쓰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북론과 남론 — 이 구분만 이해하면 론 와인의 절반은 파악한 것이다.

북론 — 시라의 성지
북론은 가파른 화강암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포도밭이 붙어 있는 극한의 산지다. 레드는 오직 시라 한 품종만 허용된다. 에르미타주(Hermitage)는 “언덕 하나가 통째로 전설”인 곳으로, 이곳의 시라는 수십 년 숙성을 버티는 프랑스 최장수 레드 중 하나다. 코트 로티(Côte-Rôtie)는 이름부터 “구워진 언덕”이라는 뜻인데, 남향 급경사면이 햇빛을 정면으로 받아 붙은 이름이다. 여기서는 시라에 화이트 품종 비오니에를 소량 섞어 함께 발효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화이트 쪽에서는 콩드리외(Condrieu)가 비오니에 100% 화이트의 세계 표준을 만든다. 북론은 전체 론 생산량의 5%도 안 되지만, 명성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다.

남론 — 그르나슈의 왕국
아래로 내려오면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넓은 평야에 뜨거운 태양, 그리고 미스트랄이라 불리는 강풍. 여기서는 단일 품종 대신 블렌딩이 기본이고, 그르나슈를 중심으로 시라, 무르베드르를 섞는 GSM 블렌드가 이 지역에서 완성된 공식이다. 남론의 왕은 샤토네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다. “교황의 새 성”이라는 뜻으로, 14세기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왔던 시절 교황의 여름 별장이 있던 곳이다. 최대 13개 품종 블렌딩이 허용되는 자유로운 규정, 낮의 열기를 밤새 포도에 돌려주는 주먹만한 자갈(갈레 룰레) 깔린 밭이 트레이드마크다. 지공다스, 바케라스가 “제2의 샤토네프”로 뒤를 따르고, 그 아래 코트 뒤 론(Côtes du Rhône) 등급이 1~2만 원대 데일리 와인 시장을 책임진다.

코트 뒤 론 — 프랑스 와인 입문의 정석
마트나 와인샵에서 가장 자주 만나게 되는 론 와인은 단연 코트 뒤 론이다.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기본 등급인데, 남론의 넉넉한 햇살 덕분에 저렴한 가격에도 과일 맛이 꽉 차 있어 “프랑스 와인 입문은 코트 뒤 론부터”라는 말이 공식처럼 통한다. 라벨에 마을 이름이 추가된 “코트 뒤 론 빌라주(Villages)”는 반 등급 위로, 가격 차이는 크지 않은데 품질이 눈에 띄게 올라가는 실속 구간이다.

여담

샤토네프 뒤 파프에는 1954년 제정된 진짜 법령이 하나 있다 — “마을 상공에 UFO(비행접시)의 이착륙을 금지한다.” 당시 프랑스를 휩쓴 UFO 소동에 마을 의회가 유머로 응수한 것인데, 아직도 폐지되지 않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마을 조례로 남아 있다.
남론의 강풍 미스트랄은 시속 90km까지 불어 포도나무를 휘게 만들지만, 습기를 날려 포도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남론 밭의 나무들이 죄다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이유다.
양갈비, 양꼬치와 론 레드의 궁합은 페어링 교과서의 고정 페이지다. 남프랑스 허브(로즈마리, 타임) 향이 와인에도 배어 있어 허브 마리네이드 육류와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뮈스카 드 봄드브니즈(Muscat de Beaumes-de-Venise)라는 달콤한 주정강화 와인도 남론의 숨은 특산품이다. 디저트 와인 입문용으로 종종 추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