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방스 (Provence)
프로방스(Provence)는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 라벤더밭과 햇살의 그 프로방스다. 그리고 와인 세계에서는 단 하나의 색으로 통한다 — 분홍. 생산량의 약 90%가 로제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로제가 주력”인 메이저 산지다. 연한 연어빛 드라이 로제라는 스타일 자체가 프로방스의 발명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600년의 로제
프로방스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산지다.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인들이 마르세유를 세우며 포도를 들여왔는데, 당시 양조 기술로는 껍질 침용을 길게 하지 않아 와인이 자연스럽게 옅은 분홍빛이었다. 즉 프랑스 와인의 역사는 사실 로제로 시작된 셈이다. 수천 년이 지나 레드와 화이트가 주류가 된 뒤에도 프로방스만은 로제의 전통을 지켰고, 2000년대 로제 열풍이 불자 “원조”의 지위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연할수록 좋다? — 프로방스 스타일의 문법
프로방스 로제는 그르나슈, 생소(Cinsault), 시라, 무르베드르를 짧게 침용해 만든다. 색은 연한 양파 껍질빛부터 연어빛까지 — 그리고 맛은 철저히 드라이하다. 딸기와 복숭아 향이 살짝 스치고, 산뜻한 산도와 은은한 허브 뉘앙스로 마무리되는 이 스타일은 “달콤한 핑크 와인”이라는 로제의 편견을 부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위스퍼링 엔젤(Whispering Angel), 미누티(Minuty) 같은 브랜드가 세계적 성공을 거두며 “여름 = 프로방스 로제”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로제 너머의 프로방스
로제의 그늘에 가려졌지만 만만치 않은 레드도 있다. 방돌(Bandol)은 무르베드르 중심의 진하고 야성적인 레드로, 프로방스의 숨은 자존심이다. 20년 숙성을 버티는 방돌 레드는 “프로방스에도 그랑 크뤼급 레드가 있다”는 증거로 통한다. 화이트로는 카시스(Cassis)의 미네랄리티 넘치는 해안 화이트가 부야베스(마르세유식 해물 스튜)의 공식 파트너다.
여담
로제는 “차갑게, 부담 없이, 아무 음식에나”라는 만능 카드다. 특히 피크닉, 루프탑, 해변 — 야외 상황과의 궁합은 스타일 자체에 내장되어 있다. 니스식 샐러드, 올리브, 타프나드 같은 지중해 음식은 물론 치킨, 피자와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할리우드 스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소유했던 샤토 미라발(Miraval)의 로제가 세계적 히트를 치며 “셀럽 로제” 장르를 열었다. 이혼 후 와이너리 소유권 분쟁이 와인 뉴스 단골이 된 건 덤이다.
프로방스 밭에 부는 강풍 미스트랄은 포도를 건조하게 지켜줘 유기농 재배 비율이 프랑스 최고 수준이다.
로제 전용 연구소(Centre de Recherche et d’Expérimentation sur le Vin Rosé)가 프로방스에 있다. 로제의 색을 과학적으로 분류하는 세계 유일의 기관 — 분홍색을 연구하는 연구소가 실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