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또 샤스 스플린(Chateau Chasse Spleen)은 보르도 메독의 물리(Moulis) 마을에서 나오는 레드 와인이다. 1855년 등급표에는 이름이 없지만, 국내 인지도만 놓고 보면 웬만한 그랑크뤼 클라세를 앞선다. 이름 자체가 가진 이야기의 힘 덕분이다.
한눈에 보기
이름의 유래 — 우울을 쫓다
샤스 스플린은 프랑스어로 “우울을 쫓아낸다”는 뜻이다. 이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영국 시인 바이런이 이곳 와인을 마시고 “우울을 쫓는 데 이만한 약이 없다”고 했다는 설, 그리고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에 실린 연작 스핀(Spleen)에서 왔다는 설이 대표적이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와인 이름 하나로 문학사가 딸려 온다는 점이 이 샤또의 매력이다.
등급 이야기도 흥미롭다. 1855년 등급 분류는 메독 안에서도 몇 개 마을에만 적용됐고, 물리는 대상에서 빠졌다. 그래서 샤스 스플린은 등급 없이 품질만으로 평판을 쌓아왔는데, 그 결과 “등급표가 전부는 아니다”를 증명하는 대표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테이스팅 포인트
블랙커런트와 자두 같은 검은 과일이 중심에 있고, 삼나무와 담뱃잎, 은은한 흙 뉘앙스가 뒤를 받친다. 오크에서 온 바닐라도 얹히지만 과실을 덮을 정도는 아니다. 물리는 자갈과 점토가 섞인 토양이라 힘 있고 단단한 스타일이 나오는데, 샤스 스플린은 그 힘을 균형 있게 다듬는 쪽이다. 16~18도로 내고 디캔팅 한 시간이면 충분히 열린다.
페어링 추천
스테이크와 양갈비가 정석이다. 소스를 진하게 쓴 스튜나 뵈프 부르기뇽 같은 요리와도 잘 맞고, 한식이라면 갈비찜이나 등심구이에 붙이면 좋다. 숙성 하드 치즈와도 훌륭한 조합이다.
여담
여담으로 샤스 스플린은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면서 국내 인지도가 크게 올랐다. 덕분에 “그랑크뤼는 아니지만 이름은 다 아는 보르도”라는 독특한 위치를 갖게 됐는데, 회식 자리에서 부담 없이 꺼내기 좋은 가격대라는 점도 한몫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