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GSM블렌드(Rhone/GSM Blend)
론 블렌드(Rhône Blend), 흔히 GSM 블렌드라고 불리는 이 조합은 그르나슈(Grenache) + 시라(Syrah) + 무르베드르(Mourvèdre) 세 품종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프랑스 남부 론 밸리에서 수백 년에 걸쳐 완성된 레드 블렌딩 공식으로, 보르도 블렌드와 함께 세계 블렌딩 와인의 양대 교과서로 꼽힌다.
세 품종의 역할 분담
GSM이 오래 사랑받는 이유는 세 품종의 역할이 절묘하게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그르나슈는 잘 익은 딸기·라즈베리 향과 부드러운 질감, 그리고 높은 알코올로 와인의 몸통을 만든다. 시라는 후추와 훈연향, 진한 색을 더해 뼈대를 세운다. 무르베드르는 야성적인 가죽·흙 뉘앙스와 단단한 타닌으로 구조와 숙성력을 책임진다. 축구로 치면 공격수(그르나슈), 미드필더(시라), 수비수(무르베드르)가 완비된 팀이다. 어느 하나가 빠져도 경기는 되지만, 셋이 모였을 때의 완성도가 다르다.
어디서 만들까
원조는 프랑스 남부 론이다. 교황의 와인으로 유명한 샤토네프 뒤 파프(Châteauneuf-du-Pape)가 이 스타일의 정점이고, 지공다스(Gigondas), 바케라스(Vacqueyras)가 그 뒤를 잇는다. 좀 더 일상적인 가격대로는 코트 뒤 론(Côtes du Rhône)이 있는데, 1~2만 원대에 프랑스 와인의 기본기를 경험할 수 있어 “프랑스 와인 입문 국룰”로 자주 추천된다. 신대륙에서는 호주 바로사 밸리가 GSM의 제2의 고향이다. 100년 넘은 그르나슈·무르베드르 고목이 즐비해서, 원조 못지않은 GSM이 나온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이 스타일에 빠진 생산자들을 “론 레인저스(Rhône Rangers)”라고 부른다.
맛과 향
잘 익은 붉은 과일과 검은 과일이 섞인 향, 후추·허브(가리그라 불리는 남프랑스 덤불 향)·가죽 뉘앙스, 넉넉한 알코올과 둥근 타닌. 전체적으로 “햇살 좋은 남프랑스를 병에 담은 맛”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보르도 블렌드보다 과일 맛이 앞서고 타닌이 부드러워서, 처음 마시는 사람에게는 GSM 쪽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여담
블렌딩 비율은 생산자 마음이다. 샤토네프 뒤 파프는 공식적으로 13개 품종까지 섞을 수 있는데, 실제로 13개를 다 넣는 곳(샤토 드 보카스텔이 대표적)도 있다. 라벨엔 똑같이 샤토네프 뒤 파프라고 적혀 있어도 병마다 레시피가 다른 셈이다.
양고기와의 궁합이 교과서급이다. 남프랑스 허브에 재운 양갈비 구이는 현지의 국민 조합이고, 한국식으로는 양꼬치·양갈비 집에서 GSM 한 병이 정확히 그 역할을 한다. 훈제육, 바비큐, 소시지 플래터와도 잘 맞는다.
무르베드르는 스페인에서 “모나스트렐(Monastrell)”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스페인 후미야 지역의 모나스트렐 단일 품종 와인은 1만 원대 가성비 레드의 숨은 강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