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브리아 (Umbria)
움브리아(Umbria)는 이탈리아 반도 한가운데, 바다에 닿지 않는 유일한 중부 내륙 지역이다. “이탈리아의 초록 심장”이라는 별명처럼 언덕과 올리브밭, 중세 도시들이 이어지는 이 조용한 땅은, 시끄러운 옆동네 토스카나의 그늘에서 자기만의 와인 두 장을 조용히 갈고닦아왔다 — 하나는 화이트의 고전, 하나는 레드의 괴물이다.
오르비에토 — 교황들의 화이트
절벽 위 중세 도시 오르비에토(Orvieto)는 이탈리아 화이트 와인 역사의 산 증인이다. 화산 응회암 절벽에 파놓은 지하 셀러에서 만들던 이 와인은 중세 교황과 화가들의 총애를 받았다 — 성당 벽화를 그리던 화가 핀투리키오는 보수 조건에 “오르비에토 와인 무제한”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오늘날의 오르비에토는 그레케토와 트레비아노를 블렌딩한 산뜻한 드라이 화이트가 주류로, 1~2만 원대에 이탈리아 중부의 식탁 문화를 경험시켜주는 실속 카드다.
사그란티노 — 이탈리아에서 가장 타닌이 강한 레드
움브리아의 진짜 비밀 병기는 몬테팔코 마을의 토착 품종 사그란티노(Sagrantino)다. 폴리페놀(타닌) 함량이 세계 주요 품종 중 최고 수준으로 측정되는, 말 그대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검고 단단한 레드”다. 블랙베리와 감초, 흙과 가죽 향의 이 와인은 최소 37개월 숙성 규정을 거쳐도 여전히 강건해서, 바롤로처럼 시간을 요구하는 장기전형이다. 한때 말린 포도로 만든 달콤한 미사주로 명맥만 유지하다 1990년대 드라이 스타일로 부활한, 움브리아판 품종 부활 드라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여담
움브리아는 트러플의 땅이다. 흑트러플 파스타에 몬테팔코 로쏘(사그란티노+산지오베베 블렌드), 노르치아 햄과 렌틸 요리에 사그란티노 — 산속 미식과 산속 와인의 자급자족형 페어링이 완성되어 있다.
토르지아노 마을의 룽가로티 가문은 움브리아 와인 부흥의 대부로, 이탈리아 최초의 와인 박물관도 세웠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오르비에토 대성당 — 유네스코급 순례지와 와이너리가 30분 거리에 공존해 “느린 여행”의 성지로 꼽힌다.
사그란티노라는 이름은 “성스러운(sacro)”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미사주로 쓰이던 역사가 이름에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