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시멘토(Appassimento)는 수확한 포도를 바로 짜지 않고 수 주에서 수개월간 말린 뒤 양조하는 이탈리아의 전통 기법이다. 수분이 빠져나가며 당분·향·성분이 농축된 반건포도 상태의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밀도와 복합미가 나온다. 베네토의 아마로네가 이 기법의 세계적 아이콘이다.
말리는 동안 일어나는 일
전통적으로는 대나무 발이나 나무 상자에 포도를 한 겹으로 펼쳐 통풍 좋은 다락에서 말렸다(요즘은 온습도를 제어하는 건조실이 흔하다). 3~4개월간 수분이 30~40% 날아가면서 당분이 농축되고, 체리잼·말린 무화과·초콜릿 계열의 향이 발달한다. 이 상태로 발효하면 알코올 15~16%의 드라이 와인(아마로네)이 되고, 발효를 중간에 멈추면 달콤한 레초토(Recioto)가 된다 — 사실 역사적으로는 달콤한 레초토가 원조이고, 아마로네는 발효가 “실수로 끝까지 가버린” 결과물에서 출발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실패가 걸작이 된 또 하나의 와인사다.
아마로네만이 아니다
이 기법은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 있다. 토스카나의 빈 산토(Vin Santo)는 말린 청포도로 만드는 호박색 디저트 와인으로 비스코티를 찍어 먹는 전통이 유명하고, 롬바르디아의 스포르차토는 네비올로를 말려 만드는 알프스의 아마로네다. 고대 로마 문헌에도 말린 포도 와인이 등장하니, 2천 년 묵은 레시피가 현대에 부활한 셈이다.
여담
- 포도를 말리는 동안 곰팡이가 슬면 전량 폐기 위험이 있다. 아마로네가 비싼 이유는 농축의 수학(포도 5kg으로 일반 와인 3병 분량 대신 1병)에 이 리스크 비용까지 더해진 결과다.
- 아마로네 양조 후 남은 포도 찌꺼기 위에 일반 발폴리첼라를 부어 재발효시킨 것이 리파소(Ripasso) — “아마로네의 흔적을 우려낸” 실속 카테고리다.
- 아파시멘토 와인은 숙성 치즈, 갈비찜·장조림 같은 진한 간장 단맛 요리와 잘 맞는다. 겨울밤 난로 앞 와인이라는 별명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