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류캡(Screwcap)은 코르크 대신 돌려서 여닫는 금속 마개다. 한때 “저가 와인의 상징”으로 취급받았지만, 지금은 뉴질랜드와 호주 와인의 대부분이 채택한 표준이며 고급 와인에도 당당히 쓰인다. “스크류캡 = 싸구려”라는 공식은 와인 세계에서 가장 널리 퍼진,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깨진 편견 중 하나다.
코르크의 배신 — TCA 오염
스크류캡 혁명의 방아쇠는 코르크의 고질병이었다. TCA라는 화합물에 오염된 코르크는 와인에서 젖은 신문지·곰팡이 냄새가 나게 만드는데(“코르키 와인”, “부쇼네”), 한창 심할 때는 전체 와인의 몇 %가 이 오염으로 버려졌다. 수백만 원짜리 와인도 코르크 하나로 하수구행이 되는 러시안룰렛 — 2000년 호주 클레어 밸리의 리슬링 생산자들이 집단으로 스크류캡 전환을 선언하고 뉴질랜드가 국가적으로 동참하면서, 판이 뒤집혔다.
밀폐냐 호흡이냐
남은 논쟁은 숙성이다. 코르크는 미세하게 공기를 통과시켜 와인을 천천히 산화·숙성시키는 반면, 스크류캡은 밀폐력이 강해 신선함을 오래 보존한다. 그래서 “신선함이 생명인 화이트·어릴 때 마시는 와인은 스크류캡, 수십 년 숙성이 전제인 그랑 크뤼급은 코르크”라는 실용적 분업이 자리 잡았다. 다만 스크류캡도 내부 라이너로 산소 투과율을 조절하는 기술이 발전해, 장기 숙성 실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중이다. 전통이냐 기술이냐 — 승부는 아직 진행형이다.
여담
- 스크류캡의 실용적 최강점은 “다시 닫기”다. 피크닉, 캠핑, 반병만 마시는 날 — 코르크 스크류 없이 열고 그대로 닫아 냉장고에 넣으면 끝이다.
- “펑” 소리가 없어 아쉽다는 정서적 반론도 있다. 개봉 의식의 낭만은 아직 코르크의 지분이다.
- 코르크 산업의 심장은 포르투갈이다(세계 생산의 절반). 스크류캡 논쟁은 한 나라의 기간산업이 걸린 문제이기도 해서, 코르크 진영의 품질 개선 노력도 치열하다 — 경쟁이 양쪽을 다 발전시킨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