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넬라이아와 마세토 — 볼게리의 두 번째 전설과 프레스코발디

페어링연구소

2026-07-22

사시까이아가 볼게리의 문을 열었다면, 그 옆집에서 두 번째 전설이 태어났다. 보르도 블렌드의 오르넬라이아, 그리고 메를로 단일로 이탈리아 최고가를 다투는 마세토 — 그런데 이 형제 와인의 이야기는 만든 가문과 소유한 가문이 다르다는 데서 극적으로 꼬인다. 만든 이는 안티노리의 아들이고, 지금의 주인은 안티노리의 700년 라이벌 프레스코발디다.

오르넬라이아 — 둘째 아들의 독립선언

1981년, 로도비코 안티노리가 볼게리에 테누타 델 오르넬라이아를 세웠다. 로도비코는 티냐넬로의 피에로 안티노리의 친동생 — 어머니 카를로타 델라 게라르데스카에게서 물려받은 볼게리 땅이 그의 몫이었다. 형이 피렌체에서 가문의 제국을 이끄는 동안, 동생은 이모부 로케타 후작의 사시까이아 바로 옆에서 자기만의 이름을 걸었다. 안티노리라는 성을 라벨에 쓰지 않은 것부터가 독립선언이었다.

로도비코의 무기는 국제적인 안목이었다. 미국 와인의 아버지라 불리는 러시아계 양조 거장 앙드레 첼리스체프를 고문으로 모셨고, 훗날 보르도의 미셸 롤랑까지 합류시켰다. 1985년 첫 빈티지의 오르넬라이아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을 엮은 보르도 문법의 와인 — 그리고 2001년, 오르넬라이아 1998이 와인 스펙테이터 올해의 와인 세계 1위에 오르며 사시까이아의 아우가 아니라 대등한 이름임을 증명했다.

마세토 — 파란 점토 언덕의 우연

마세토의 탄생은 계획이 아니라 발견이었다. 오르넬라이아 부지 안의 작은 언덕 하나가 주변과 전혀 다른 흙 — 수백만 년 전 바다였던 시절의 청회색 점토 — 으로 되어 있었는데, 첼리스체프가 이 땅을 보고 여기엔 메를로를 심으라고 조언한 것이다. 보르도 포므롤의 페트뤼스를 키운 그 점토와 같은 계열이었기 때문이다.

1986년 첫 빈티지의 마세토는 그렇게 7헥타르 남짓한 언덕 하나의 메를로 100% 와인으로 태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의 페트뤼스라는 별명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가장 비싼 와인의 자리를 다투게 됐다. 2019년에는 아예 오르넬라이아에서 분리된 단독 와이너리 건물까지 지어졌다 — 언덕 하나가 독립 왕국이 된 셈이다.

주인이 바뀌다 — 볼게리의 왕좌 게임

1990년대 말, 로도비코는 확장 자금을 위해 지분을 팔기 시작했고 미국의 로버트 몬다비가 대주주로 들어왔다. 2002년 몬다비는 피렌체의 프레스코발디 가문과 오르넬라이아를 공동 운영하기로 했는데, 2004년 몬다비 자체가 대기업에 인수되는 격변이 일어나자 프레스코발디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몬다비 몫을 전량 인수해 2005년부터 오르넬라이아와 마세토의 단독 주인이 된 것이다. 안티노리의 아들이 만든 볼게리의 보석이, 안티노리의 영원한 라이벌 가문의 왕관 보석이 되는 순간이었다.

프레스코발디 — 미켈란젤로에게 와인을 팔던 가문

프레스코발디는 피렌체에서 700년, 30대를 이어온 귀족 가문이다. 중세에는 영국 왕실의 은행가였고(에드워드 1세와 2세의 금고를 맡았다), 르네상스에는 예술가들의 후원자였다 — 미켈란젤로에게 와인을 공급하고 그 값을 그림으로 받았다는 기록이 가문의 자랑거리로 전해진다. 헨리 8세의 영국 궁정에도 와인을 댔으니, 와인 수출의 역사로는 안티노리 못지않은 이력이다.

오늘날 프레스코발디는 토스카나 전역에 왕국을 펼치고 있다. 끼안띠 루피나의 니포차노, 브루넬로의 카스텔조콘도, 몬탈치노의 럭셔리 브랜드 루체, 그리고 볼게리의 오르넬라이아와 마세토까지 — 토스카나의 다양성을 경작한다는 가문 모토 그대로, 산지별 대표 선수를 수집하는 전략이다.

안티노리 vs 프레스코발디 — 피렌체 두 왕조의 경쟁

두 가문의 경쟁은 와인 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벌전이다. 안티노리 26대 vs 프레스코발디 30대, 640년 vs 700년 — 역사의 길이부터 서로를 의식하는 두 피렌체 명가는 중세에는 같은 도시의 상인 귀족으로, 현대에는 이탈리아 와인 수출의 양대 축으로 평생을 겨뤄왔다. 안티노리가 티냐넬로와 솔라이아로 슈퍼투스칸의 아이콘을 쥐자, 프레스코발디는 오르넬라이아와 마세토 인수로 볼게리의 왕관을 가져갔다 — 혁신의 안티노리, 수집의 프레스코발디라는 대비가 흥미로운 지점이다. 물론 두 가문 모두 공식적으로는 경쟁이 이탈리아 와인 전체를 키웠다고 점잖게 말한다.

여담

쫓겨나듯 오르넬라이아를 떠난 로도비코의 후일담이 이 드라마의 마지막 장이다 — 그는 볼게리 이웃 마을 비본나에 테누타 디 비세르노를 세워 재기했는데, 이번엔 형 피에로가 파트너로 합류했다. 평생 각자의 길을 걷던 형제가 60대에 처음으로 한 라벨 아래 뭉친 것이다. 여담으로 오르넬라이아는 매년 예술가와 협업하는 아트 라벨(벤데미아 다르티스타)로도 유명한데, 미켈란젤로와 와인을 거래하던 가문이 주인이 된 뒤의 기획이라는 점이 묘하게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