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블랑카 밸리 (Casablanca Valley)

카사블랑카 밸리(Casablanca Valley)칠레 산티아고와 항구도시 발파라이소 사이, 태평양에서 20km 남짓 떨어진 서늘한 해안 산지다. “레드의 나라” 칠레에서 화이트와 서늘한 기후 품종의 반란이 시작된 곳으로, 칠레 와인 지도의 다양성은 사실상 이 계곡에서 출발했다.

안개가 키우는 포도
카사블랑카의 아침은 안개로 시작한다. 남극에서 올라오는 훔볼트 한류가 만드는 해무가 매일 아침 계곡을 덮었다가 정오쯤 걷히는데, 이 천연 커튼이 일조 시간을 줄이고 기온을 낮춰 포도를 천천히 익게 만든다. 캘리포니아 소노마의 안개와 같은 원리다. 그 결과 자몽과 라임 향이 쨍한 소비뇽 블랑, 미네랄 감도는 샤르도네, 그리고 붉은 과일의 산뜻한 피노 누아까지 — 더운 나라 칠레에서 서늘한 기후 와인이 나오는 역설이 완성된다.

30년 만에 쓴 성공 신화
1980년대 초까지 이곳은 포도 재배지로 취급받지 못했다. 서리가 잦고 물이 부족해 “포도가 안 되는 땅”이라던 통념을, 1982년 파블로 모란데라는 양조가가 캘리포니아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뒤집었다. 관개 기술과 서리 방지 시스템으로 첫 밭이 성공하자 대형 와이너리들이 앞다퉈 몰려왔고, 30년 만에 칠레 화이트의 대명사가 됐다. 오늘날 한국 마트의 1~2만 원대 칠레 소비뇽 블랑 라벨을 뒤집으면 높은 확률로 “Casablanca Valley”가 적혀 있다.

여담

이름은 영화 「카사블랑카」와 무관한 스페인어 지명(“하얀 집”)이지만, 덕분에 기억하기는 세계에서 제일 쉬운 산지명이다.
발파라이소 항구의 세비체, 굴, 조개 요리와 카사블랑카 소비뇽 블랑은 현지 국룰이다. 한국식으로는 회, 굴, 조개찜과 정확히 호환된다.
서리와의 전쟁은 여전해서, 봄철 새벽이면 밭에 대형 선풍기(윈드머신)가 돌아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산티아고-발파라이소 고속도로가 계곡을 관통해, 두 도시 여행 중 점심 시음 코스로 들르기 좋은 위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