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밸리 (Hunter Valley)
헌터 밸리(Hunter Valley)는 시드니 북쪽에 자리한,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 산지다(1820년대 개척). 그리고 와인 세계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 헌터 세미용이다. 덥고 습해서 이론상 고급 와인이 나오기 힘든 땅에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스타일이 태어났다.
헌터 세미용 —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헌터 세미용은 일찍 수확해 알코올 10~11%의 가볍고 밋밋한 화이트로 병입된다. 어릴 때 마시면 “레몬 물인가?” 싶을 정도로 심심한데, 여기서 반전이 시작된다. 10~20년 병 숙성을 거치면 오크통 근처에도 안 갔던 이 와인에서 토스트, 꿀, 라놀린 향이 피어나며 복합적인 걸작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낮은 도수로 이런 숙성력을 내는 메커니즘은 아직도 완전히 규명되지 않아 “헌터의 미스터리”로 불린다. 티렐스(Tyrrell’s)의 Vat 1이 이 장르의 세계적 교과서다.
헌터 쉬라즈 — 부드러운 장기전
레드 쪽에서는 쉬라즈가 오래된 전통이다. 바로사의 잼 같은 파워와 달리, 헌터 쉬라즈는 중간 바디에 흙과 가죽 뉘앙스가 감도는 “유럽풍” 스타일로 숙성된다. 현지에서는 이 스타일을 “헌터 버건디”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수령 100년 이상의 고목 밭들이 여전히 현역인 것도 이 지역의 자산이다.
여담
시드니에서 차로 2시간 — 호주에서 가장 관광화된 와인 산지로, 열기구, 콘서트, 치즈 공방이 어우러진 주말 여행 코스의 정석이다.
헌터 세미용은 굴, 흰살생선회와 최고의 궁합이다. 낮은 도수+높은 산도 조합이 해산물의 섬세함을 덮지 않기 때문. 숙성 헌터 세미용은 훈제 연어와 전설적인 조합으로 꼽힌다.
수확기가 남반구 여름 소나기철과 겹쳐 “비 오기 전에 따는” 조기 수확 전통이 생겼는데, 이것이 저알코올 스타일의 기원이 됐다. 약점이 시그니처가 된 또 하나의 사례다.
호주 최초의 와인 관련 관광열차와 최초의 셀러도어(시음 판매장) 문화가 여기서 시작됐다.